문학동네시인선 197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Q1. 시인님의 세번째 시집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이 출간되었습니다. 시집을 펴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시집이 나온 날 작업실 벽을 청소했어요. 시집을 쓰는 동안 벽을 더럽혔거든요. 고민이 적힌 포스트잇을 벽에 가득 붙여놓았는데요, 그동안 했던 고민들을 살펴보며 포스트잇을 떼어냈어요. 절반 이상을 뗄 수 있었어요. 벽에 포스트잇을 붙인다고 해서 공간이 좁아지는 것은 아닌데, 포스트잇을 떼고 나니 작업실이 넓어 보이는 거예요. 벽도 다르게 보이고요.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종이 같달까요. 벽이 허물을 벗었다…!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Q2. 시집 속에는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고, 대화를 주고받는 한편으로 홀로 침잠하는 존재들이 있어요. 다정하고 귀여운 이들의 모습이 재미있으면서도 때로는 가슴이 저며서 오래 눈과 마음에 담게 되었는데요, 시인님께서 유독 마음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당분간 그 인물들이 제게 중요하지 않기를 바라요. 사랑하지 않으려 애씁니다. 사랑은 부작용이 너무 큽니다! 인물들이 제 머릿속에 다시 놀러오려고 하면 돌려보내고요…(강하게 키우는 편…) 시집을 묶고 나면 일종의 ‘정 떼기’ 구간을 지나게 되는데요, 등장인물들을 잊고자 애씁니다. 시집 속 인물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먹여주고, 재워주고, 등하원시키고, 교육비도 지원했는데… 이제 좀 독립하지…? 생활비 정도는 스스로 벌어야 하지 않겠니? 나도 내 갈 길 가련다… 안녕!”
Q3. 본문의 시들과 역자 후기가 충돌하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발생하는 지점이 즐거웠습니다. 특히 ‘앗, 이게 맞는 내용인가?’ 생각하면서 교정지를 오가다가 유쾌한 함정에 빠진 기분이 들었어요. 시집 속 「시인의 말」이라는 시에는 “꿈을 꾸는 동안에도 나는 바깥의 나와 맞물린다”는 문장이 있는데 실제 ‘시인의 말’인 “아직 잠들지 마/ 우리는 현실을 사냥해야 해”와 어우러지며 꿈과 현실이 서로 배치되는 듯하면서도 경계가 흐트러지는 듯했습니다. 자연스레 시인님께 꿈과 현실이 어떤 관계를 갖는지 궁금해졌어요.
저에겐 꿈 또한 삶의 일부입니다. 꿈속에서 한 일도 실제로 제가 한 일이라고 여겨요. 가령, 꿈속에서 괴물을 만나서 미친듯이 도망친 거예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잠에서 깨죠. 일어나서 생각해요. ‘수고했다. 오늘 할 일은 꿈속에서 얼추 다 했으니, 이제 좀 쉬자.’ 꿈에서 활동량이 많으면 현실에서는 좀 쉬엄쉬엄 사는 편이지요. 음, 꿈에서 중간고사를 봤어요. 총 활동량 보존 법칙에 따라 그날은 좀 쉽니다. 시험 본 날에 왜 뭘 또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어느 날 게으른 문보영을 목격한다면 이렇게 생각해주세요. 꿈속에서 많이 살아서 현실은 덜 살고 있구나.
Q4. 이번 시집의 시들은 ‘모래 서점’을 상상하며 썼다고 하셨었는데요, 혹시 시집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모래 서점을 보다 더 자세히 그려볼 수 있도록 서점을 설명하는 설정들이 더 있을지 궁금합니다.
시집을 내는 순간 고의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잊고 내가 내 시를 까먹을 때 기분이 좋거든요.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이라… 모래비가 많이 내려서 바닥은 모래사장이 되었겠군요. 오래 서 있으면 아마 모래에 파묻힐 거예요. 모래를 파헤치면 나무문이 있는데, 그 문을 열면 지하 비밀 공간이 나옵니다. 그런데 문을 여니 하늘인 거예요. 이로써 여태껏 거꾸로 된 세상에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인생에서 벌어진 얼토당토않은 일들이 비로소 이해가 되지요… (방금 지어냈습니다)
Q5. 독자 여러분께 인사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